살아내다/하루
이어지는 이야기
최범준
2012. 10. 12. 10:42
어제 한 친구와 두시간정도 통화를 했다. 내가 있는 위치, 역할, 기대치에대한 고충을 정직하게 이야기했더니 나보고 더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하라고 종용하더라. 욕도하고 소리도 지르고.
범교회적 잘못, 종교권력을 쥔 채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는 교만, 다름을 틀림이라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편협함에대해선 거기가 페이스북이라도 욕짓거리가 나오지만, 이런 류의 일엔 당최 그렇게 말이 나오질 않는다. 물론 감정이 아예 상하지 애흰다거나 득도했단 게 아니다. 쥐어짜내듯 몇 마디했지만 어색해서 관뒀다.
이 감정은 이런식으로 풀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섭섭하고 갑갑한데, 심지어 화도나지만 그 화의 방향은 특정인물들에게 향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몰아넣도록 무심한 듯 종교의 틀에 끼워맞추려는 제도와 그런 시선들이다.
가능성 많고 또 장점이 참 많은 이 친구들을 이렇게밖에 못 세우는 건 스스로의 탓만은 결코 아니다.
범교회적 잘못, 종교권력을 쥔 채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는 교만, 다름을 틀림이라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편협함에대해선 거기가 페이스북이라도 욕짓거리가 나오지만, 이런 류의 일엔 당최 그렇게 말이 나오질 않는다. 물론 감정이 아예 상하지 애흰다거나 득도했단 게 아니다. 쥐어짜내듯 몇 마디했지만 어색해서 관뒀다.
이 감정은 이런식으로 풀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섭섭하고 갑갑한데, 심지어 화도나지만 그 화의 방향은 특정인물들에게 향하는 게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몰아넣도록 무심한 듯 종교의 틀에 끼워맞추려는 제도와 그런 시선들이다.
가능성 많고 또 장점이 참 많은 이 친구들을 이렇게밖에 못 세우는 건 스스로의 탓만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