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다/하루

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시위가 끝났다.

최범준 2014. 5. 14. 14:23

  작년 하반기부터 노조에 가입하면서 가속화되었던 문제가 올해 본격적으로 이어져 내내 파업이었다.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철야농성도하고, 총장실 앞에서 앉아있기도 하고 운동장에 나와 시위하기도 하고.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무슨 병에 걸린마냥 조용했다.

 

  학교에 복학한 이후 줄곧 참 된 복음화는 사영리를 모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해오면서도, 학교에 일어나는 이런 크고 작은 불합리함-하나님의 공의가 무너진 결과에 침묵해왔던 내 부끄러운 모습을 참 많이 괴로워했다. 안녕하세요 열풍이 불 때도 우리학교는 비참했다. 그때 나는 마찬가지로 침묵했다. 대자보에 무언가를 붙일만큼 내가 깨어있지 못하다는 것과 그 이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지만 사실 그걸 감당할만큼의 용기가 없었던 것이 더 크다.

 

  그리고 이번 청소노동자들의 본격적 파업에 있어서도 분명히 무언가 참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자보를 몇 번이고 쓰고말고 쓰고말고, 붙이려다말고 하다가 세월호사건이 터졌다. 원리원칙을 지키지 않고, 옳음보다 좋음을 추구한 극단적 결과는 언제나 인간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설교말씀 역시 느헤미야를 통해서 '기도에 앞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역사의식이 없는 기도는 역사를 바꿀 수 없다.'며 행동을 촉구하였고, 나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 들어가 삶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가르칠 것이며, 순에도 줄곧 그렇게 가르쳐왔던 나이기에 더이상의 신앙양심을 마비시킬 수 없었다.

 

  며칠 뒤, 학교에 가보니 소자보들이 붙어있었다. 모임이 하나 만들어졌는데, 학생들이 뭉쳐서 학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었다. 너무 애매하고 두루뭉술했기에 긴가민가했지만, 이렇게라도 움직이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면 나같은 겁쟁이도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해서 연락을 했고, 그 날 저녁 바로 모임에 참여했다. 노동자 측 이야기와 용역, 학교측 이야기를 고루 들어보면서 서로 차이점과 모순점에 대해 알아보고 원만한 해결을 볼 수 있도록 학교의 실질적인 주인인 학생들이 나서고 이 문제를 좌시하지말자는 취지에서 모였다. 이미 많은 부분이 진척이 되었다고. 다만 자보가 너무 두루뭉술하고 소극적이어서 뭔지 알기 힘들고, 사대에만 붙어있다보니 전교적 모임이 되기 힘들다는 의견, 이제껏 해온 것을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정리해서 객관적으로 보여주자는 의견을 수렴하여 새로운 자보를 붙이기로 했다. 축제가 다가오는 마당에 학교측에서 더욱 강격하게 대응하다보니 하루빨리 해결해야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 날 밤 일이 해결된 것이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되었고, 간접고용은 유지하지만 업체가 바뀌어도 지금의 조건은 보장한다는 확약서를 받아냈다. 최고의 해결은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 한 해결이 되었기에 일단 기쁜 반면, 한 편 씁쓸하더라. 이건 뭐 밥숟가락을 얹은 것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 아닌가. 맥이 빠지면서도 뒤늦게서야 찌질하게 용기를 낸 나 자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더라. 얼른 감동이 왔을 때 혼자라도 움직여봤으면 하나님께 좀 덜 부끄러웠을텐데.

 

  모임의 원래 목적은 달성되었지만, 아직 학교에는 여러 해결되지 않은 크고 작은 문제가 많고 학생들은 관심을 잘 가지지 않기에 우리 모임이 다른 방향으로 지속되어야겠다는 의견을 내었고, 기존 멤버들 사이에서도 그런 의견이 오갔다고 하더라.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졸업을 하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까지 내가 몸담은 이 사랑하는 학교에 하나님 나라의 공의가 더욱 흐르게 되길 소망하고, 살아간다.

 

십자가 헛되지 않게,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