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다/네게해주고픈말

두번째, 고통의 문제에 관하여

최범준 2015. 1. 6. 23:47

  너는 아마 기억을 못 할테지만, 이맘때쯤 너는 굉장히 심한 감기에 걸렸고 아직도 완쾌되진 않았단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는 눕혀놓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라도 생긴 것인지 고래고래 소리지르기까지 하더구나. 너의 고통을 내가 분담할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진심으로, 너의 그 고통을 내가 담당하고 싶단다. 한 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 엉엉 울며 얼굴을 긁어대는 그 고통이 나의 것이길, 그맘때쯤 하지도 않는 기침을 사래들리기 전까지 켁켁 해대는 그 고통이 나의 것이길 기도하고 바랐단다.

 

  그런데 아들아, 나는 네가 아픈 와중 보이는 행동들을 통해 내 머릿속에서 명제적지식으로만 자리잡았던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이라거나 그 때문에 주어지는 아들에 대한 시련을 조금 더 실질적으로 이해하게 되더구나. 아마 이건 두번째 쓰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네가 아주 나중에야 이해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에 일러두마.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네가 이해하는 한에서 충분히 곱씹고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문제란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프기 전에도 너는 유독 나에게 많이 안겨 있으려 했지만, 아프고나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단다. 엄마의 젖을 찾는 빈도도 더욱 늘어났고. 그것은 아마 네가 경험한 고통의 종류와 그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의 종류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일게다. 대개 너의 가장 큰 결핍은 애정과 굶주림일 것이며, 그것에 대한 가장 명확한 해결방법은'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먹는 것'이란다. 이것이 아마 네 짧은 삶에서 네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완전한 고통의 해결법이자 만족을 주는 선택일테지. 그러다보니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젖을 찾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은 때까지 안겨만 있으려하더구나.

 

  물론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지만, 첫번째 글에도 얼핏 이야기했듯이 '네가 느끼는 최고=너에게 꼭 필요한 것'은 언제나 참된 명제가 아님을(사실은 거짓인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단다) 명심해야 한단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을 때 계속 네가 젖을 물고있는들 사래걸리고 배탈이 나는 것 밖에 다른 무슨 결과가 있겠니? 더욱 문제는, 너는 이 모든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기에 네 잘못된 선택이 부르는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 다시금 그 잘못된 선택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너는 분명히 지나치게 젖을 먹기 때문에 탈이나서 배가 아픈 것인데, 그 아픈 것을 해소하기 위해 다시 젖을 먹으려한다면 나와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할 수 밖에 없단다.

 

  하지만 아들아, 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결코 '너의 그 어리석은 선택이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한 댓가로 너를 정죄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알아줬으면 싶다. 젖을 더이상 물게 하지 못 하면 너는 마치 우리가 너를 그 고통 속에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 아닌가-생각할 수 있겠지. 너를 그 고통에서 당장 해방시켜둘 수 없고 잠시 유예시킨다는 점에서 사실/事實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란 점에서 결코 진실/眞實일 수가 없단다.(사실과 진실을 교란시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조금 더 나중에 이야기 해주마.) 너에게 진정한 해결책, 혹은 지금보다 훨씬 생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또 그것을 네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얼마간 네가 그 상황 속에 머무를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해다오. 아빠인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고통 없이 무한히 행복한 것(아마도 이건 약물과잉중독이거나, 인지능력이 퇴화에 가깝게 떨어진 경우에만 가능할 것 같구나)을 누리는 네가 아니라, 고통의 의미를 통해 참되고 바른 행복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을 선택할 줄 아는 네가 되는 것이란다.


  덧붙여서, 네가 옷을 갈아입어야 할 때는 네 손에 쥔 '국민갈비'를 반드시 놓아야 한단다. 똥을 싸서 바지에 조금 샜을 때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겨야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너의 초점은 언제나 '내 손에 쥔 이 장난감을 아버지가 빼앗으려한다'에 쏠려있더구나. 아무리 네가 울고불어도 소용이 없고, 네가 더욱 굳게 그걸 쥐고 있다면 나는 힘을 써서라도 네 손을 풀고 강제로 네가 쥔 국민갈비를 내려놓게 만든단다. 문제는 엉덩이인데, 왜 하등 상관없는 손인지는 네가 나중에 반드시 알게 될거다.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이미 이해했을테지. 그러나 아들아. 이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네가 그걸 언제 깨닫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네가 깨닫지 못해서 도저히 납득을 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의 청결을 위해 기꺼이 너의 눈물을 쏙 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단다. 이것이 결국 너를 위한 나의 사랑이라고하면 너는 '그건 아버지의 입장만 반영된 이기적인 반쪽짜리 사랑이에요!'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ㅎㅎ



  글을 쓰다보면 이 주제로 더욱 깊이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구나. 하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너를 키우면서 내가 그때그때 느끼는 '이 관련된 단상/短想'을 풀어놓는 것이고, 당연히 예상독자인 너를 위한것이니만큼 불필요하게 깊이 들어가지는 않으마. 훗날 네가 이 글을 읽고 나에게 직접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화두를 제시해준다면 정말로 기쁠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