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다/하루

자유에 관한 단상

최범준 2016. 12. 31. 13:36

자유에 관한 나의 생각은 제법 보수적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사실상 부정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유시민의 영향을 많이 받고 신앙을 더 깊게 회의하면서부터 자유에 대한 내 인식을 바꿔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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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뚱뚱이들이 잘못을 저질러 교무실에 불려오면, 나는 대부분 이런 말을 한다.

 

네가 뭐든 할 수 있지만,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 행동이 불러올 후폭풍을 정확하게 인지시키는 것이 어떤 행동을 제한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전자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여지를 학생에게 넘기는 것이고, 후자는 그런 판단에 대한 맹목적 순종만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도 전자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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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신앙을 가지게 되면 선악과와 타락의 문제에서부터 자유의 가치가 벽에 부딪히게 된다. 엄연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게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던가 하지 말아야 할 최후의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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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선악과와 타락의 문제야말로 기독교가 참된 자유를 이야기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것에는 하면 안 되는 것이 존재한다.’는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그런 점에서 창세부터 자유의 본질을 건드린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진짜 자유를 주는 것이다. 당위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행동은 철저히 개인의 (자유)의지로만 행할 수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저지른 대가를 공의롭게 제시함으로써 자유의 참된 의미를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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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많은 아이들이 자유를 그저 좋은 것으로만 여기고 가벼운 것으로만 여기는데, 사실 자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명제 뒤에 따라오는 더욱 중요한 명제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만일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는 그 순간부터 자유가 아닌 방종이 된다. (그리고 방종은 절대로 추구해서는 안 될 쓰레기같은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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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의 책임을 지는 한, 어떤 표현이든 그 자체로는 자유로움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의 무거움이란 자유롭게 행하는 당사자보다, 그 영향을 받는 타인에게 더욱 살에 와닿는 의미가 된다. 그의 자유로운 언행이 나에게 칼이 되거나 독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사회 전체에 칼이 되거나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입장이나 책임을 지는 입장의 사람들은 대개 모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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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을 짚고 싶다. 자유가 그러한 후폭풍을 불러오더라도 우리는 자유를 허용해야한다. 자유를 자유되게 해방시켜야한다. 자유가 야기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자유라는 가치 자체를 억압하는 것으로 지우려 들어선 안 된다. 자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장이 돼야하는데, (휴머니스트로서나 그리스도인으로서나)자유의지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가장 고귀한 가치, 핵심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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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길러주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절제와 상황판단을 길러줄 필요는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영역만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철학만으로는 성립 불가능한 자유의 참된 의미에 교육이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유는 온전히 자유로써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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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교육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요구되며, 담임이라는 꾸준한 보조자가 붙어있는 것이다. 억압과 체벌은 행동을 쉽게 소거시킬 수 있지만, 그 행동의 근원이 되는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잡초를 제거하고 싶다면 잡초를 뽑아야 하지 가위로 눈에 보이는 것만 잘라내면 안되는 것처럼, 멀리본다면 학생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교칙(교칙 자체가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칙 중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나 교사의 행동들은 지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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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지혜나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절제마저 길러줄 수 없다면, 그렇게 했을 때 책임을 져야하는 정직한 자세라도 길러줘야 한다. 잘못에 대한 정당한 책임을 져 본 경험은 생각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