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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다/맛

2012Love Mongolia 후기

5년 만에 다시 밟는 몽골, 한편 3년 만에 다시 가는 선교. 몽골을 간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고, 쉽게 신청한 후 가기 직전까지도 마음의 갈등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무조건반사같은 신청이 아니었나 고민도 했고 내가 지금 이 시점에 그 땅을 갈 이유가 무엇인지와 또 나는 얼마나 준비되어있는가를 정직하게 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재정을 준비하면서도 집중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고, 사람과 추억을 좇아가는 것은 아닌지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제 진로와 결코 멀지 않은 몽골땅을 3학년 2학기에 다시 밟는 것, 내가 처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그 땅을 각 자리에서 리더로 섬기는 이 시점에 다시 밟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몽골땅, 징기스칸 공항에서 몽골냄새를 다시 맡고나서야 제가 진정 몽골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팀원들 중 선교경험이 꽤 많은 편이고 몽골을 많이 방문한 편이었지만, 오랜만에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낯선 것이 더 많았습니다. 시쳇말로 감이 떨어졌죠.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제 말과 행동의 미숙함으로 드러났습니다. 머리론 알고 있었지만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던 몽골의 시간개념, 거기에 따르는 변화무쌍한 일정과 상황. 들뜬 마음에 무리한 언행으로 공동체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했던 점. 익숙해지기까지 며칠의 시간이 꼬박 필요했습니다. 아니, 저 자신이 이정도로 관대하게 평가할 정도면 실은 선교 가 있는 내내 이 모양이었을 겁니다.

각설, 도착 첫 날부터 날씨를 비롯한 게스트하우스의 시설 등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에서 악재가 일어나고 상황이 꼬이면서, 항상 내 생각보다 한 단계 낮은 정도의 상황에 내가 놓일 수 있음과 편안하거나 정상적(?)으로 지내려는 그런 기대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분명했던 점은 저 자신에게도 굉장히 유익이었던 것이, 음식 때문에 한 번 불평한 것 외에는 지내는 동안 단 한번도 일정, 상황, 시간에 관한 한 볼멘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사실 이번 단기선교 내내 저는 마지막으로 왔었던 09년도 동아시아 선교 때 제 모습과 비교를 해왔었고 그때와 달리 이런 부분에서 제가 나름 성숙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런 마음가짐은 아무래도 이번 사역팀에서 제 위치를 꾸준히 생각해 온 것이 그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08, 09년도 두 번의 단기선교에서도 순장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공동체 전체의 어떤 영적인 흐름보다는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일과 성취에만 초점을 맞추던 것이 제 솔직한 모습이었습니다. 저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어주시는 여러 은사와 또 통로로 사용하여 보여주시는 일들이 마치 내 잘남인 것처럼(이때도 물론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신실하게 고백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나의 의로 받아들였던 적도 있었고, 실질적으로 공동체 지체들을 품지 못하는 내 마음을 이런 부분으로 메꾸려는 더러운 마음이 제 안에 가득했었습니다. 세상에, 바로 내 옆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무감각한 제가, 그 분의 은혜 가운데 처음보고 자주 볼 수 없는 먼 땅의 지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통찰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토록 뻐길 수가 있었다니. 표현이 과격해도 이해해주세요. 돌이켜보면 죽고싶을만치 부끄러운 순간들입니다. 사역()을 하지 못하게 된 순간에 드러나는 내 신앙의 실체를 율법적인 행위로 메꾸려하는 모습, 누차 강조하지만 같이 사역 온 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섬세한 노력 없이 은사니 뭐니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드러날 것을 기대하는 그 뻔뻔함. 올해는 반드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었습니다.

이번 팀의 멤버구성이 독특했던 점도 제게 이런 책임감과 주의를 환기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제외하곤 형제가 두 명뿐이었는데, 나머지 형제 한 명은 단기선교가 처음인 지체였습니다. 심지어 나이와 경험도 많은 편에 속했죠. 자연스레 제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저 자신의 어떠함과 저 자신에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어떠함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 이러니까 자기의만 또 잔뜩 드러내는 것 같네요. 그런 부분을 이제야 좀 돌아보게 되었단 뜻이지, 본대로 훌륭하게 살아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좀 흥분했나봅니다. 전에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게 여긴 이런 부분을 자각했다는 감격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다시 돌아와서, 가초르트로 가기 전 전도집회를 하는 2일의 시간 동안, 변화된 야르막과 몽골땅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미친 듯 상승하는 물가, 더욱 심해진 부익부빈익빈, 여전한 실업률. 빈민가와 다를 바 없는 야르막의 상황 속 순전함으로 살아가는 몽골인들이 참 많이 줄었단 것을 체감했습니다. 이전과 달리 교회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 밖에 잘 나오지도 않고 낯선 이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사람들. 삶에 찌들어 절망하고 분노한 눈빛들. 다시 찾은 아리옹무르교회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세대 리더들이 유학과 선교를 떠나고 또 어떤 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다가,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꿈을 위해 교회를 떠나게 되어 2세대 리더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전체적으로 다운된 분위기, 예전처럼 힘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리더들을 위한 기도회를 부탁하신 바이라목사님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도집회 떄 모인 사람들도 새로운 사람들보다는 교회를 다니다 떠났던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전도집회 전 기도하며 감동을 받았던 알콜중독, 가정에 대한 상처, 폭력과 관련된 사람들도 더러 보였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제 마음 가운데 저 자신의 문제보다는 이 기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참 많이 굳어있다는 그런 답답함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절망하게 만들었는지, 우리는 단기팀으로 이곳에 와서 어쩌면 휘젓고 가는 이벤트성 사역을 하고 가겠지만 남은 이들이 여전히 씨름하며 싸워야 될 삶의 문제들이 얼마나 치열할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사역이 의미없다거나 보여주기식이란 것은 결코 아니지만, 제 마음 한켠에 이 몽골땅에서 제가 품게 돠는 마음이 결코 이런 것으로 끝나지 않아야한다는 거룩한 부담감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전도집회를 마치고 아리옹무르교회와 여름캠프를 위해 가초르트로 왔습니다. 사실 제가 많이 염려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방언과 신유를 위시한 각종 능력은사에 대한 회의감, 고민이 끝없이 저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에 혹시나 내가 이 시간을 기대하지 않게되거나 고리타분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죠. 그러나 이 부분을 두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의지적으로 방언기도를 하는 동안 제 안에 이 순종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손대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보여주시고 감동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기하게도 감지할 수 있었고, 이런 부분들을 함께 기도했던 영환이와 나눌 때 일치하는 부분이 많음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마음이 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제가 듣고 경험하고 본 것을 아니라고 말 할 거짓된 용기가 제게 없음을 고백합니다.

여전히 저녁에 기도를 하면서 마음이 닫힌 지체들도 많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며 그들의 돌같이 굳은 마음이 살처럼 부드럽게 풀어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교회를 떠나 밴드를 꾸린 바기, 상처로 교회를 떠났던 더기 전도사님, 직장문제에 대한 부담감으로 정신적 고통을 많이 받았던 앙가락도... 각자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반응하여 마음을 열고 또 치유받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였던 저 자신은 정작 이들을 변화시킬만한 어떤 준비된 품성도 없었고, 이들에게 덕이 될만한 삶을 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저는 그저 통로였고, 오히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도 과거 내가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의 시간이 그 바탕이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연약함과 아픔을 들어 써주셨습니다. 그냥 한 번 던져보는 위로의 말이나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진정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잘됨을 바라는 마음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섬긴답시고 기도하며 무언가 대단한 일을 보려고 했고 그들보다 뭔가 좀 나은 것 같은 더러운 우월감을 철저히 회개하며, 그들에게서 오히려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죠.

, 드러나는 신유의 기적들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에 하나님께서 만지기 원하신 부분은 그런 것이 아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복음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복음의 기초가 서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삶의 영역 가운데 쉽사리 무너지고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복음을 복음되이 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고 또 받지 않아도 좋을 상처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박목사님의 강의를 통해 제대로 된 신학없이 개교회의 체험적 신앙과 한국선교사님들의 저마다 특색이 묻어난 채 신앙생활을 하던 이들에게 성경이 말하고 지지하는 신앙의 기초가 그들의 마음에 쌓이게 됨을 꿈꾸게 되었고, 마침내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구원을 얻는 아리옹무르지체들이 되길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드러나는 은사가 강력한 전도의 도구나 하나님의 드러나심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겠지만, 결코 우리의 사역이 한 번 보여주고마는 신비주의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미 그들이 여러차례 경험한 그런 예언, 신유 등 각종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은사들을 이제 받는 입장에서 그들이 서로에게 흘려보내는, 좀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날 것을 꿈꿉니다. (이 부분은, 캠프 마지막밤과 리더수양회 때 박목사님께서 특별히 강조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아리옹무르교회의 담당이신 바이라목사님께서 이제 안식년에 들어가시게 되는데, 2세대리더들과 또 어기 전도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득 마지막날 밤 찬양 때 이들의 힘찬 찬양(첫날과 달리 계속해서 강건해지고 힘이 붙는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과 순전한 고백들을 보며 중보하는데 겉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들을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이런 순전함으로 걸어가기에는 이 당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정말 때에 맞게 있었으면 좋겠고, 이들이 이 땅에서 복음을 희망삼아 살아가고자하는 그 의지가 너무나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하나님되이 알 때, 단순히 교회생활 잘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넘어 야르막을 변화시키고 몽골 땅을 변화시키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아픔들에만 집중하지 않고, 시대와 몽골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미션투어 이야기를 하기 전, 한가지 이상한 부분이 더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캠프 때 우즈벡의 모슬렘 자매가 참여를 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매였고, 이런 기독교문화를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자매였죠. 그러나 이 자매가 우리의 기도하는 도중, 또 박목사님의 설교 중 까닭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낯설고 무서운 마음도 있었지만 도대체 왜 눈물이 흘렀는지 자기도 알 수 없다고. 자기가 신앙의 결단을 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컸기에 우리가 함부로 강요할 수 없이 다만 더욱 축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저는 이 자매가 다소 원초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때론 너무 커서, 저 역시 그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고기가 바다를 바다되이 인식할 수 없다고 하면 올바른 비유가 될까요?

캠프가 끝나고 미션투어를 하는 기간 동안 장기간 버스 안에 있으면서 여러 책도 읽고 말씀묵상도 하고 지체들과 때떄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 시간들이 아마 나중에 훌륭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비록 불편한 점은 많았지만요. 아무튼 이번 미션투어는 결코 관광이 주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을 잡도록 꽤 노력해보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시시때때로 제 마음속에 이번 투어의 의의를 의심하게 되고 회의감에 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내가 너무 일중심적으로만 생각한 것과, 지금 이 순간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만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여전히 자유하지 못하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래 캠프를 일찍 치룬 후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 한 서몽골 어느지역의 땅을 방문키로 한 것이 변경되어, 다음 사역을 위해 서몽골정탐으로 준비된 시간이었는데도 눈 앞에 놓여진 일면만 본 제 자신이 부끄러웠죠. 박목사님께서 이 시간동안 우리가 다음 서몽골로 갈 때는 어떤식으로 준비를 할 것이며, 이런 방법들과 루트를 이용할 수 있겠다고 계속 고민하셨다는 나눔을 듣고 나서야 이 부분을 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 물론 자연경관은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금수강산이라고 참 아름다운 절경들이 많지만, 우리나라와 또 다른 지평선의 아름다움과 맑은 자연, 커다란 칼데라호수 등의 감동을 글로 형언하긴 무리였죠. 자연을 보며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몽골에 대한 마음이 진하게 남아있어 저 자신이 무슨 향수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저는 지금의 제 삶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가야겠죠. 하지만 제 안에 한가지 꿈꾸는 것이 있다면, 단기사역외의 형식으로 보다 길게 몽골땅(될 수 있으면 아리옹무르 교회)을 밟는 것입니다.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진실로 꿈꿔왔고, 다시 꿈꿉니다. 시간이 지나 25이 되어 이 꿈이 조금은 더 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빚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몽골땅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몽골이 의원내각제인지도 제대로 몰랐고 어떤 산업이 발달했고 또 어떤 경제적 문제가 있기에 이렇게 빈곤하게 사는 사람이 많은 지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제 사랑의 허구성을 낱낱이 파헤쳐야 하겠죠. 뜬구름잡는 식으로 감정에 빠져서 그냥 한 번 사랑한다고 말해보는 것은 위험하고 나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진정 제가 몽골을 사랑하고 꿈꾼다면 몽골어로 의사소통하고, 몽골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도 깊어야 하겠죠. 내가 기도하는 몽골과 실제 몽골이 다르다면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진정한 종교인으로 남겠죠. 그러나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싶지 종교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길었네요. 나름 좀 줄여본다고 했는데, 이 부분은 여전히 미숙한 것 같습니다. 해서 키워드를 좀 정리해보자면.. ‘드러나는 것보다 더 깊은 한 사람의 돌아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의미를 좀 더 삶으로 새기게 된 점. 하나님의 크심을 내 마음으로 재려한 교만함을 정직하게 발견하고 괴로워한 점. 절망과 상처를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사랑으로 다정하게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또 몸 된 교희의 지체로서의 내 모습. 내가 꿈꾸게 된 비전을 빚어가시는 하나님.’ 정도가 되겠네요.

끝으로 물질과 기도로 후원해주신 모든 사랑하는 동역자분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거기서 보고 느끼게 하신 하나님께서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또한 합당하게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지속적인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