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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다/하루

시험 전엔 항상 상념이 많아진다

교회와서 공부하다가 영주누나랑 예비교사로서 가지는 교육현실에대한 회의, 대안과 또 각자 비전에대한 나눔을 하고있다.

우리과는, 사대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교사가 되고싶은걸까?

오년전 철밥통 공무원이되고싶어서라고 답한 친구와, 누군가의 진실한 섬김의 마음을 위선이라 매도한 형과 및 여러 불순분자들이 생각난다. 사대생이 모두가 정직한 마음으로 스승이 될 셈이 아니란 걸 깨달은 그 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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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국어교육론 시험이다. 국어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고민하다가 김대행교수님의 질문앞에 멈춰섰다. 내가 국어교육을 하지 않는들 학생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내가 수업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심각한 변화를 겪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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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어교육과에 온 이유는 진부하다. 선생님이 되고싶었고, 무엇으로 가르칠까하다가 내가 책과 문학을 좋아하기에 국어로 교과를 잡았다. 내 생각이 안일하고 단순했단건 대학입학 후 곧 깨졌다.

나는 학교의 국어교육을 통해 문학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학교공부를 할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지만 국어수업을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나는 국어교사로서 자질이 있는가?

대안학교 및 MK로 시선을 옮겨본다. 혹시 이것이 임용에대한부담감에 덧입혀진 그럴싸한 명분은 아닐까? 임용에 합격할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이런 거창한 명분과 시간을 들여 변명하고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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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을 배우면서, 나는 왜 이런 훌륭한 취지의 학습체제가 몇 년 못가 바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납득하기가 싫었다. 교육철학 때 배웠던 내용 중 가장 인상깊은 하나는 바로 우리나라교육의 가장 근원적 문제는 남북분단에 있다는 것이다. 그로말미암은 이데올로기가 교육 깊숙이 스며들었고, 안그래도 편향적인 교육이 정권교체때마다 또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입시 일방향적 교육도 문제다. 모든 훌륭한 전인적성장의 기반은 수능 아래 무너진다. 방법적 지식마저 명제적 지식으로 대체되는 게 이나라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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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썩은 곳 중심에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공교육의 체제 속에서 내가 배우고 자라온 방법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용기와 힘이 있으며, 또 내 사례가 진정한 교육적 방법이라 할 수 있는가? 학생들과 진정 소통하기에는 교사의 수업외 잡무가 너무 많은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가 있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육공무원이라도 되어야하나? 그러나 교육공무원이된들 교육체계를 완전 뒤흔들 역량이 내게 허락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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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서, 내가 정신 못차리고 막 살아갈 때 내게 진정한 스승으로 다가와 준 분을 떠올려본다. 그 분은 수학교사였다. 그러나 나는 그 분께 희망과 따뜻함, 그 시절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하나님닮은 사랑을 느꼈다. 수학지식은 별개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 분의 직업은 교사였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위해 그런 직업을 가지기로 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팠기에 그런 직업을 가졌다는 것. 그 당시 내가 구분하지 못한 점이다.

문학을 분석할 줄 모른다. 읽을 줄 알고 쓸 줄 알 뿐이다. 문학이 무어냐 물어도 학술적 장광론은 커녕 뾰족한 답도 못 낸다. 나는 그런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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