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채플을 마치고 염간사님과 함께 두어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최근 나의 삶, 내가 겪는 상황에대한 내 감정들, 꿈꾸고 기도하며 준비하는 것들. 그리고 나의 현실.
스무살부터 나를 보아오신 염간사님은 나를 참 잘 아신다. 그 점에 가끔 몹시 놀라곤 하는데, 어제도 그랬다. 내가 응당 들었어야했고, 더욱 고민해봤어야했고, 꾸준히 기도해봤어야 할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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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집에 가려다 교회를 들려 예배당에서 기타를 잡았다. 내가 부를 노래와 드릴 고백을 그 분께 올려드리고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 분께 꼼꼼하게 감사를 드리고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펑펑 울지 않았지만 눈물이 뚝뚝 흘렀다. 슬프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눈물이 흐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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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귀간사님을 뵙고 들었던 이야기와 연장선상에서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설렘을 넘어선 마음, 마치 마음의 불씨가 당겨진 느낌. 그래서 곧장 집에 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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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와 이런 이야길 좀 나누는데 갑자기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생뚱맞은 상황에 나온말이라서 면박을 줬지만, 글쎄 맞는 말인 것 같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 꿈은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교사였고, 예수님을 알게되고나서도 그 방향이 크게 틀어지진 않았다. 그러다가 좀 더 열린 세계를 보고 거기서 생각을 키우고 또 다른 꿈들을 가지며, 사춘기시절 너무나도 쉽게 결정하고 밖으로 꺼내보지 않았던 나의 하고픈 것을 다시 끄집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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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에서 마치 불타는 듯 뜨겁게 던져지는 질문.
나는 무엇에 진정 미쳐서 내 삶을 던질 것인가?
이것은 내 존재론적 문제이기도하다. 결코 '직업을 무엇으로 할 것 인가?'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해야할 것. 이 세가지를 살핀다는 것은 결국 나의 좋고나쁨에대한 명확하고 분명한 가치기준을 잡는 것과, 나를 정직하게 바라볼 줄 아는 용기있는 통찰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 외의 것과 얼마나 융화되어 그 나라의 선을 이뤄가느냐하는 치열한 조율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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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기질이 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사육되어왔기에, 그런 제도권안에서도 충분히 내 몫을하며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지 않은 길에대한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 한다면.. 나는 뭐든 잘하지만 탁월한 게 없는. 그러니까 꿈틀댄 적 없이 주변상황과 기대, 필요에의해 내 삶이 굴러간다면.. 난 분명히 속을 시커멓게 썩여가며 억지로 견뎌내는 삶을 살 것 같다. 이건 굉장히 두려온 일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기도하며 그 분의 다양한 이끄심을 민감히 잡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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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거나 잘한다. 뭐든 썩 빠지는 게 없다. 그래서 주변의 시선도 나는 만능형인간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탁월한 게 없다. 무엇하나 완전히 미쳐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과 글. 그리고 그 기저에 쌓인 논리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떠오르지만, 이건 뛰어난 아마추어일진정 프로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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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원래 무언가 썼다가 지워졌다. 다만 기억나는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염간사님의 말씀이 매우 지당하다는 것. 아쉽다. 몹시 중요한 번뜩임이라 생각했는데.
스무살부터 나를 보아오신 염간사님은 나를 참 잘 아신다. 그 점에 가끔 몹시 놀라곤 하는데, 어제도 그랬다. 내가 응당 들었어야했고, 더욱 고민해봤어야했고, 꾸준히 기도해봤어야 할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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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집에 가려다 교회를 들려 예배당에서 기타를 잡았다. 내가 부를 노래와 드릴 고백을 그 분께 올려드리고 겸손히 무릎을 꿇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그 분께 꼼꼼하게 감사를 드리고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펑펑 울지 않았지만 눈물이 뚝뚝 흘렀다. 슬프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눈물이 흐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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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귀간사님을 뵙고 들었던 이야기와 연장선상에서 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설렘을 넘어선 마음, 마치 마음의 불씨가 당겨진 느낌. 그래서 곧장 집에 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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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와 이런 이야길 좀 나누는데 갑자기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생뚱맞은 상황에 나온말이라서 면박을 줬지만, 글쎄 맞는 말인 것 같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 꿈은 한 치 흐트러짐 없는 교사였고, 예수님을 알게되고나서도 그 방향이 크게 틀어지진 않았다. 그러다가 좀 더 열린 세계를 보고 거기서 생각을 키우고 또 다른 꿈들을 가지며, 사춘기시절 너무나도 쉽게 결정하고 밖으로 꺼내보지 않았던 나의 하고픈 것을 다시 끄집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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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에서 마치 불타는 듯 뜨겁게 던져지는 질문.
나는 무엇에 진정 미쳐서 내 삶을 던질 것인가?
이것은 내 존재론적 문제이기도하다. 결코 '직업을 무엇으로 할 것 인가?'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 해야할 것. 이 세가지를 살핀다는 것은 결국 나의 좋고나쁨에대한 명확하고 분명한 가치기준을 잡는 것과, 나를 정직하게 바라볼 줄 아는 용기있는 통찰력,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 외의 것과 얼마나 융화되어 그 나라의 선을 이뤄가느냐하는 치열한 조율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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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기질이 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사육되어왔기에, 그런 제도권안에서도 충분히 내 몫을하며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지 않은 길에대한 아쉬움을 털어내지 못 한다면.. 나는 뭐든 잘하지만 탁월한 게 없는. 그러니까 꿈틀댄 적 없이 주변상황과 기대, 필요에의해 내 삶이 굴러간다면.. 난 분명히 속을 시커멓게 썩여가며 억지로 견뎌내는 삶을 살 것 같다. 이건 굉장히 두려온 일이다.
더욱 적극적으로 기도하며 그 분의 다양한 이끄심을 민감히 잡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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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거나 잘한다. 뭐든 썩 빠지는 게 없다. 그래서 주변의 시선도 나는 만능형인간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탁월한 게 없다. 무엇하나 완전히 미쳐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과 글. 그리고 그 기저에 쌓인 논리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떠오르지만, 이건 뛰어난 아마추어일진정 프로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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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원래 무언가 썼다가 지워졌다. 다만 기억나는건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염간사님의 말씀이 매우 지당하다는 것. 아쉽다. 몹시 중요한 번뜩임이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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