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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다/말씀묵상

출애굽기15장 후반부, 주일설교

삼일 내리 물을 마시지 못 해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 그 백 성들의 투덜거림, 분노, 짜증.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감행한 탈출의 끝이 다른방식의 죽음이 라면 누구나 그랬으리라.

마침 발견한 물은 써서 도무지 마실 수 없던 '마라'. 백성들 의 원망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불과 10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오아시스 엘림이 있었고,

마라를 정화시킬 나무가 거기 있었다.

기도할 줄 모르던, 그러니까 도무지 삶에 있어 신인식이라 곤 없던 그들에겐 불평과 분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모세는 하나님께 이 상황을 물어 그 분이 열어주시는 대로 보고 행했다.

크리스찬의 삶에 불평과 불만없이 초자연적인 승리로 장식 해야한다거나 성공스토리만 꾸역꾸역 집어넣으란 게 결코 아니다.

다만

그들의 여정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며 그 분의 흐름일 뿐이란 인식이 있을 때

내가 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제단하는 교만을 발견하여 그것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 싸워야 할 기간과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결국 그것이 교만이란 것,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실 구원에대한 불신과 불인지에 기인한 인간중심 의 사고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거기서 불과 10km밖에는 그들이 마땅히 쉬어갈 곳이 있었 고, 그것은 그 백성들이 알던 알지 못 하던 하나님께서 그 들을 위해 '이미'예비해두신 복 중 하나였다.

절망하라. 분노하라. 짜증도 내라. 그러나 생명의 하나님은 그것과 상관없이(우리 관점에선, '그것을 너머') 우리에게 물을 주신다. 생명을 보여주신다.

우리는 결국 내 감정을, 내 상황을-하고 나 중심으로 살아갈 때 바로 그 '내 삶'구석구석 스며든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쉽게 놓치게 된다.

나에게 집중하는 그 모든 허구적 사랑을 벗어난다고 해서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건 아니다. 결국 하나님 의 관심사는 그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할'우리'기 때 문이다. 그 분은 관계다. 사랑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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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육신의 애욕정도에만 국한된, 사랑에대한 좁은 인식이 우리에게 팽배합니다. 진정 사랑 그 자체 이신. 사랑 그 너머의 세계 실존 그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알기 원합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 계 신다고 하신 하나님, 그 말의 신비를 더 알아가게 하 여주십시오. 우리 안에 그 나라가 이미 이뤄졌음을 선포하신 예수닞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