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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다/말씀묵상

요한복음 2장의 구조가 가지는 상징성

요한복음 2장은 예수님이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후 유월절에 맞춰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 성전청결을 행하시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바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가나 혼인잔치 기적→가버나움에서 잠깐 머뭄→예루살렘 성전 청결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 구조적 짜임새를 중시하기 위해 공관복음과 사건배치자체도 다르게 한 요한복음이, 단순히 사실나열을 위해 가버나움에서 잠깐 머물렀다는 구절을 집어넣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 도대체 요한복음 2장의 구성이 '가나 혼인잔치 기적→가버나움에서 잠깐 머뭄→예루살렘 성전 청결'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내용적으로 한 번, 구조적으로 한 번 같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먼저 내용을 건드려 보자.


2장 초반부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셔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의 기적의 상징성을 뽑아내면 다음과 같다.


잔치 자리에 부족한 포도주를 채우시는 예수님,

포도주=.

궁핍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주신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되자 예수님이 피를 흘리러 오셨다.

 

그럼 왜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궁핍할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백성들보다 더 사랑하시는 걸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절기인 유월절에 이들이 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성전에서 부당이득을 취하며 하층민들을 이집트인들처럼 압제하고 있었고, 모든 족속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인해 복을 얻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방인에게 은혜로 주어진 이방인의 뜰에서 그런 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즉 요한복음 2장의 가나혼인잔치의 부족한 포도주라는 결과의 원인을 거슬러올라가보니 이스라엘 그 자체나 다름없는 성전의 타락이 그 이유란 걸 보여주기 위해 성전청결을 이 다음 이야기로 끌어온 것이다.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며칠 머무르셨단 이야기는 이 맥락 안에서 우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해의 내용을 말하기 전에 구조를 좀 건드려보자.



 

마태복음에서 나왔듯 성경은 종종 수미상관의 구조(이하 인클루지오)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 인클루지오는 거의 필연적으로 교차대구법을 따르게 된다. 이 틀을 요한복음 2장에 다시 적용해보면

 

가나의 잔치자리에서 넘치는 포도주라는 기적을 베푸시어 백성들을 축복

가버나움에서 머물지만 여러 날 계시진 않음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채찍질이라는 심판을 내리시어 백성들을 징계

 

이렇게 된다. 즉 예수님이 앞으로 할 사역의 중대한 지점을 2장에서 이미 큰 그림 그리듯 딱 건드리는 것이다. 바닥이 난 포도주 항아리처럼 메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그 분의 피로 적실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자들에게 공의로 심판하겠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 은혜와 심판(사실 설명을 위해 둘로 나누었지만 결국 은혜나 심판이나 같은 거라고 본. 이건 또 언젠가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 할 수 있기를)사이에서, 이걸 행하시는 예수님이 단순히 제3자로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깊숙이 들어와 함께 먹고 마시는 분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딱딱하고 사무적으로 공과를 저울에 매달아 은혜와 심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들을 잘 아시는 상태로 이 일을 행하신다는 것을.

 

그럼 여기서 문제가 하나 남는다.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니라가 붙었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구절이 12절의 의미를 분명히 완성시키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말기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은 제자들과 잠깐 있겠으나 그 뒤에 보혜사 성령께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는 이야길 한다. 즉 이 12절은 예수님의 3년간 공생애를 상징하는 것이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가나의 잔치자리에서 넘치는 포도주라는 기적을 베푸시어 백성들을 축복

제자 및 무리들과 공생애 기간을 가지나 곧 십자가 사역을 이루심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채찍질이라는 심판을 내리시어 백성들을 징계

 

백성들에 대한 축복과 징계 사이에 공생애를 상징하는 구절이 들어가 있는데, 결국 예수님의 이 공생애를 통해 분명히 이루어지겠다는 말이 된다.

 



가버나움은 초창기 예수님의 전도근거지 같은 곳으로, 오히려 고향인 나사렛보다 훨씬 더 많은 기적을 베푼 곳이다. 베드로 장모의 집도 여기에 있고, 백부장 하인의 병도 고치고, 중풍병자도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낸 곳도 가버나움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1장에서 가버나움보고 너네한테 베푼 걸 소돔에서 했으면 소돔 심판 안 당했을 걸??’하고 강하게 책망을 하신다. 복음서 초반부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상징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요1장에서는 예수님의 사역 시작을 말하였고, 그 다음장인 요2장에서는 그 사역이 어떻게 진행될 지를 인클루지오를 통해 큰그림 한 번 그려주신 셈이 된다. 그러면서도 그 구조 속에 내용을 절묘하게 녹여냈고, 이 과정에서 부득불 성전청결 사건의 배치를 공관복음들과 달리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 어느 집사님의 질문에 답을 단 것을 조금만 손본 것이라 몸글 자체로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