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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내다

사무엘서의 주인공 사무엘서는 이름과 달리 다윗이 주인공이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서 다가올 왕정시대의 지도자 다윗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교두보다. 이름인 사무엘이지만 속알맹이는 다윗과 그 시대의 동료들. 캠퍼스 내에서 나는 어느덧 사무엘이 되었나보다. 작년에 든 감동이 이제 슬슬 분명한 응답으로 빚어지는 것 같다. 기대된다. 앞으로 일주일. 더보기
2008년 몽골영상을 다시 본 후 2008몽골 영상을 보며, 새삼 달라진 내 신앙을 느낀다. 치유사역이 일어나는 현장들을 보면서 전처럼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구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해 힘을 빌려주시고 이루시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그저 성령의 자연스러운(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역사하심을 우리가 민감하게 잡아내는 순간에 '기도'로 풀어내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힘을 빌리는 것 조차 과분하다고 해야하나. 그 넓고 원대한 총체적 흐름을 캐치해서 풀어내고, 우리가 (각자의 그릇대로)경험한 사랑과 위로를 전달하며 그를 통해 또 위로와 회복을 얻는... 아 뭐 같은 말인가?ㅋㅋ 하지만 뭐랄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늦은밤 찾아온 친구의 간청 비유와 함께 알려준 성령을 보내신단 게 '내가 구하는 것 보다 더 크고 놀라운 것, 더 원대한.. 더보기
느낌너머의 당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성령에 깨어있는 것. 잘 모르겠다. 느껴지지 않고 감지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주 특별할 때가 아니면 모른다. 아주 오래도록 고민해오고 씨름해왔다. 다른사람들은 느껴지고 들리고 그러는데 난 왜 그런 경험들이 적나? 성령충만이 감정과 상관없다는데도 자꾸 그런 강박증에 얽매였다. 뭔가 감지되지 않거나 모종의 '느낌'이 오지 않는게 내가 덜 깨어있거나 기도가 부족했거나 숨겨진 죄를 토로하지 않았다거나... 항상 자괴감에 빠졌었다. - 열아홉살부터 찬양인도를 했으니, 햇수론 칠년째 예배인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예배인도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고 막연하다. 안정감이 없다거나 평안을 못 누리는 차원이 아니라, 누미노제에 가까운 개념으로. 여하튼 하다.. 더보기
골방기도1 수많은 간증과 경험. 깨우침과 삶이 있다. 이 나이치고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본질 깊은 갈망은 숨길 수가 없다. 목이 마르다. 진정성, 진솔함. 진실 등에 민감히 반응하는 나 자신이 가끔은 외려 허구를 좇는게 아닌가 싶다. 대안없이 비판만 줄창 해대는 건 내 신앙양심이 허락지 않고. 나는 좀 입을 다물게 됐다. 내가 굉장히 껍대기같은 말만 했음을. 텅 빈 내 속을 직면하며 깨닫는다. 별 대안도 없다. 생긴들 그대로 살 능력도 내게 없다. 까마득하게 멀고 무섭게 여겨진다. 어느만큼 더 바닥을 쳐야될까? 아니면 평생 바닥에써 구르고 뒹굴어야 할까? 막막하고 답답함 가운데 찾아오실 생명의 빛을 기다린다. 돌같이 굳은 내 마음이 살처럼 부드러워지기를. - 주님. 저는 진실로 메마르고 죽은 자입니다. .. 더보기
시험 전엔 항상 상념이 많아진다 교회와서 공부하다가 영주누나랑 예비교사로서 가지는 교육현실에대한 회의, 대안과 또 각자 비전에대한 나눔을 하고있다. 우리과는, 사대생들은 어떤 마음으로 교사가 되고싶은걸까? 오년전 철밥통 공무원이되고싶어서라고 답한 친구와, 누군가의 진실한 섬김의 마음을 위선이라 매도한 형과 및 여러 불순분자들이 생각난다. 사대생이 모두가 정직한 마음으로 스승이 될 셈이 아니란 걸 깨달은 그 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내일은 국어교육론 시험이다. 국어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고민하다가 김대행교수님의 질문앞에 멈춰섰다. 내가 국어교육을 하지 않는들 학생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내가 수업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심각한 변화를 겪을 것인가? - 내가 국어교육과에 온 이유는 진부하다. 선생님이 되고싶었고, 무엇으로 .. 더보기
단 한번도 웃지 않은 예수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단 한 차례도 웃지 않으셨다. 그 분은 민망히 여기시며, 분 내시며, 괴로워하시고 답답해하시며, 슬퍼하시고 소리내어 우셨다. 산 위에서 가르치시며 복을 받을 여러사람들을 이야기 하실 때는 애통한 자,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옳음을 핍박받는 자, 의를 위해 박해받는 자를 포함시켰다. 웃지말고 종일 비장한 표정으로 살아란 말은 아니다. 하나님의 복을 풍요의 원리로만 이야기하려는 이 시대의 교회가 예수닮음을 너무나 쉽게, 아무 힘 없이 죽어버린 슬로건마냥 걸고 갖다붙이고 외치는 것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건 되게 뻔뻔하다고 생각한다. 더보기
소시민의 신앙고백 강호동에 이어 김구라까지. 그 둘을 옹호하겠단 소리는 아니지만.. 세상 어느천지에 연예인의 도덕성이 정치인의 그것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판가름되냐?? 생각해보면 정치인은 막말 기본이고 온갖비리 다 저질러도 바로 퇴임하거나 자숙하는 것 참 드물고 심지어 밝혀져도 솜방망이처벌. - 아 하나님, 진정 당신은 이 나라 중에 무력하십니다. 당신의 공의는 짓밟햤고, 그 외치는 소리도 다시 쌓은 바벨탑의 아성 앞에 너무나 쉽게 무너집니다. 숨어드는 작은 자리에 스민 당신은, 마치 말라가는 못에 아직 남은 습기같이 흔적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전지전능은 그저 우리의 신앙고백에 불과한지요? 입만 살고 힘이 없는 소시민같은 저에게는 당신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력해보입니다. 임마누엘로, 진실로 함께하시는 하나님.. 더보기
당신을 발견합니다 바람을 타고 날으시며 빛을 두르시고 또한 높은 곳에서 손을 펴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는 진실로 절망 가장 밑바닥과 뿌리깊이 박힌 애통, 짙게 드리운 좌절의 그림자와 갈기갈기 찢어진 안타까움의 틈에서 당신을 발견합니다. 더보기
변화된 일상, 그 9일에 즈음해서 떨어져 있을 땐 비판하고 뒤집어 엎어야지 다짐해도 막상 다시 들어가보면 그 속에는 온통 상처받고 부족한 영혼.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일말 진정성과 갈급함이 있는 사람들이 이모양 저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게된다. 비록 내 많은 부분이 여전한 약함으로 남아있지만, 단순히 강해짐이나 성장의 개념을 넘어선 치유받아 성숙해감, 바로 세워지는 차원에서의 나는 꽤 많이 자랐다. 성장이 아닌 성숙, 강해지는 건 아닌 치유받음... 내가 소리높여 뭐라 외치고 분석하고 관조한들, 눈 앞에 당장 무언가 필요로 하는 지체들이 있을 땐 그 사람 붙잡고 Compassion할 수 밖에 없다. Compassion! 이 얼마나 훌륭한 단어인가? 함께 고통을 짊어진다, 함께 아파한다. 나의 나됨을 알고, 타인 역시 거울에 비춰진 또 .. 더보기
논쟁의 끝에서 논리를 좋아한다. 불합리에 쉽게 분노하고 못 견뎌한다. 종종 신앙에 있어, 하나님이라 일컫는 세계의 신을 놓고 볼 때 유한하고 제한적인 하위개념이 그보다 상위개념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의미없음이요, 끝을 알 수 없는 것을 잘 앎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거기에 강하게 휘둘릴 때가 있다. 나보다 더 뛰어난 논리를 가진 자가 상대진영에 나타난다면 나의 지적신념은 산산히 부서지겠지만, 그렇다고해도 내 신앙이 바뀌진 않는다. 나 자신의 정체성-'부르심'이 바꿔놓은 신분은 흔들림조차 없다. 왜냐면 내가 지, 정, 의 모든 부분을 통해 하나님을 알며 또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연속된 경험 즉, 삶으로 체험되기 때문이다. 어느부분에 가면 내가 전개하는 모든 논리가 이미 깨진 것이거나 무의미한 것을 깨닫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