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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며 오는 주일이라면, 아니 사실 원래는 더욱 일찍 새건물에 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어야했다. 단순히 완공이 늦춰짐을 넘어서 광야생활 자체가 늘어나 고 있다. 일련의 시간들을 보내며 우리의 이런 시간들이 마치 출애굽세대의 광야생활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가 금송아지를 숭배했다거나, 우리 중 일부가 우리가 결코 새건물을 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뭐 이런 고백을 해 서 징벌을 받는단 의미는 아니다. 건물에 의존하지 않는 교회. 진정 구별된 자들의 모임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진정성, 그리고 우 리들 서로를 향한 진정성을 똑똑히 보고있단 생각이 든다. 수직관계와 수평관계의 재점검. 교회=건물이란 생각이 팽 배한 이 시대에, 원어적 의미(에클레시아;구별된 자들의 모임)의 교회가 퇴색한 이 시대.. 더보기
나의 허덕임, 그들의 허덕임 나는 종교적 황홀경에 빠져서 허덕일동안 다른 누군가는 치열하고 근본적인 생존문제에서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허덕이고 있다. 코드셋의 내게 강같은 평화, 이대귀의 나는 이란 두 곡은 이런 부분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이럴때 나는 하나님을 무엇으로부터의 방패요 피할 바위라 고백하는지 정직하게 되짚는다. 가끔은, 아니 종종, 아니 빈번히.. 나는 악함보단 약함으로부터 도망치고만다. 바라볼 자신없음, 나의 어찌할 수 없음이 날 얼마나 짓누르는지. 악함에 무너지는 때보다 약함에 함께하지 못할 때.. 나는 더욱 나를 부인하게 된다. 어쩌면 진정 악함의 핵심은 함께 아파하지 않음이 아닐까? 젠장... 더보기
마지막 주일특근 육개월만에 주일특근. 아마 마지막이 될 시간인데 감회가 새롭다. 처음 입사후 대체근무로 곧장 주일특근을 하게됐을 때 사무실에 가서 따지고 들었고, 일하는 내내 익숙잖아 생기는 실수로 마음 무겁게 일했고, 그 와중 교회건물 밖에서 드리는 주일예배의 의미를 깊게 새기기도 하고. 지난 시간들에대한 잠간 회상이 곧 감사함으로 이어진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곧잘 드러났던 시간이었고, 또 때에 맞게 채우시고 일으키시는 그분의 손길을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를 덮고 또 덮어 내 믿음을 포장하는 것을 버리고, 나를 파고 또 파서 그 '밑바닥'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며 부르짖어 다시 그 깊고깊은 어둠까지 비취는 빛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시간. 내 인간적 연약함, 종교적 허영, 영적 무기력. 그리고 그것을 정직하게 사.. 더보기